<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7/40 철학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7/40

 

"3성찰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근대 형이상학에서 아주 독창적인 사유가 등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데카르트의 <<성찰>> 불어본으로 보면, '사유한다' 불어가 팡세penser입니다.<<팡세>>Pensées 파스칼이   제목이기도 합니다. 데카르트와 파스칼은 비슷한 난관에 처해 있었다고   있습니다.  사람 모두 인간의 유한함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이때 데카르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을 향해 올라가고, 파스칼은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똑같은 '사유'인데 데카르트는 철학자의 신을 찾은 것이고, 파스칼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찾은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자기는 절대적으로 자기만을 매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대상 세계를 완전히 차단하는 절대적 무매개성은 아닌 것입니다. 신이라고 하는 보장기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자기가 대상 세계를 알려면 반드시 신을 매개해야만 합니다. 세계와 자기를 차단시킨 상태에서 내면으로 물러나 자기자신에 이르렀는데, 다시 세계로 나아가려면  자기는 신을 거쳐야만 하고, 신을 거친다 해도  세계는 항상 낯선 것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세계가 낯선 상태에 처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결국에는 오로지 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 입각해서는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없을 것입니다. 역사는 인간 행위의 산물인데, 신이 매개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날  없습니다. 사회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형이상학이 작동할  없는 것입니다. 데카르트 형이상학에서 자기는 신이 매개하여 성립한다는 점에서 미완의 자기인데, 그 미완의 형이상학을 완성시키려면 신을 폐기시켜야 합니다. 자기가 철저하게 자기로서 세계와 대면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서는 신을 매개로 삼지 않으면 타자와 자기가 세계 지평에서 만날  없습니다. 따라서 데카르트 이후의 형이상학 기획들은 인간 세계에서 타자와의 만남과 통일을 위해 신을 폐기하는 기획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근대 형이상학은 무신론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매개를 폐기한 인간은 인간만의 역사 속에서 자기를 펼쳐 보이게 됩니다. 이것으로부터 역사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심판장이 됩니다. 세계사가 세계법정이 됩니다 이것은 헤겔 역사철학의 테제입니다. 세계사는 신을 배제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역사형이상학의 장입니다."

 

강유원, <<철학고전강의>> 27 인간의 유한성에 의거하는 신의 무한성 증명 (3성찰)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6/40 철학고전강의

"1성찰에서는 '감각-지각에의존하는 나' '그것을 의심하는 나'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2성찰에서는 그러한 대립을 넘어서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certum & inconcussem) 최소한의 것", 즉정신의 우선성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출발점은 "내가보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1성찰에서는 '의심하는 나'에대립하던, '감각-지각에 의존하는 나'는 여기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출발점은 '의심하는 나'입니다. 의심하는내가 가진 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 한가지 사실뿐"인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nihil esse certi), 이것이 '의심하는 나의말'입니다."

"데카르트가 도달한 지점은 초월론적 사유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내려가 자기 자신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초월론적 사유입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초월론적 사유를 깊이 하면 할수록 초월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사유하는 만큼 현존하며, 사유하지 않으면 현존하지 않습니다. 내가나에 대해서 사유한다는 것은 초월론적 사유를 하는 것입니다....  '' '의심하는 나'도 아니고 '확신하는 나'도 아닌, 정신입니다."

"... 데카르트는 2성찰에서 초월론적 자아를 확보하였습니다. 데카르트 이후의 형이상학은초월론적 입장에 섭니다. 초월론적 형이상학은 인간정신의 세계 구축의 가능 조건을 검토하면서 인식 능력을음미하기 때문에 인식론의 성격을 띠지만, 그 형이상학의 궁극목적은 무한자로의 상승입니다. 데카르트의 초월론적 자아가 헤겔에서는 자기의식(Selbstbewubtsein)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의심하는 자아'를 말하므로 인식론의 문 기하고 있는 듯하고 앎의 문 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순수 자아를 확보하는 문 기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대의철학자들은 초월자에 대해서만 논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논변은 신학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 그들에게는 내면으로의 퇴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초월적인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뿐이고 이것이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논의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1성찰부터 일관되게 감각지, 감각을 통한 앎을 부정합니다. 감각을 통한 앎을 부정한다는 것은 철학의 전통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나 그를 계승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을폐기하려는 시도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에'우주론적 신존재 증명'이 있습니다. 이것은기본적으로 '자연 세계를 보라. 그러면 그 배후에 신이 있다는것을 알 수 있다는'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 세계를 보라'는 것은 감각을 통한 앎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1 1장에서 지각부터 앎에 이르는 과정을 논합니다. 데카르트는 이 경로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밀랍 논증의목적은 우리가 어떤 물체를 지각한다는 것 안에도 인간의 정신 활동이 들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 정신의 통찰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합니다. "나는 이 정신(cet esprit) 자체, 즉 나 자신"인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자립적 자기, 자기의식입니다. 일체의외부 대상 세계로부터 감각 데이터를 완전히 차단한 선험적인 자립적 자기의식이 성립한 것입니다. 이것은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나면서부터 역사적 경험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절대적인 선험적 자립적 자기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데카르트는 몰역사적인 출발점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사태이전에, 그 어떤 경험에도 물들어 있지 않은 순정한 사유 지점을 확보하려는 것 입니다.그렇게 순정한 사유지점을 이론적으로라도 자기 머릿속으로 확보하면, 그 순간 그 인간은 순정한존재인 신과 맞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자립적 자기의식의 의미입니다."


유원, <<철학고전강의>> 26 자립적 자기의식의 현존, 정신의 우선성 (2성찰)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5/40 철학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5/40


"...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a sensibus) 혹은 감각을 통해서 (per sensus)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솟인다는 것을 이 경험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감각이 비록 아주 작은 것과 멀리 떨어진 것에 대해 종종 우리를 속일지라도, 감각으로부터 알게 된 것 가운데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 _ <<성찰>> 1성찰"

"데카르트는 1성찰의 둘째 부분에서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앎을 부정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겨냥한 것입니다. 예전의 '나'는 감각에 의존하였고 감각은 신체에서 생겨납니다. 이 감각의 속박을 끊는 것이 데카르트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신체에서 오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끊은 다음에는 정신에만 의존하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감각으로부터 알게 된 것 가운데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각에서 얻은 것을 의심하는 나'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는 나'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카르트의 내면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자아들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꿈을 꾸고 있는 나와 현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의 대화로까지 이어집니다. 이 대화는 결국 의심의 극한에 이르게 되어 악령이 등장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악령은, 내가 사실은 신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러한 것처럼 만드는 힘입니다. 이로써 데카르트는 방법론적으로 신을 배합니다."


유원, <<철학고전강의>> 25 감각적 앎의 부정, 철저한 의심 (1성찰)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4/40 철학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4/40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세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립적 자기自立的 自己, 즉 자율(Autonomie)을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흔히 데카르트하면 떠오르는 '방법론적 회의'도 들어가 있습니다. 자립적 자기를 구축한 다음 단계가 '신존재 증명'입니다.  (...) 마지막 과정은, 앞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을 확신하게 된 자립적 자기가 외부의 사물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찰>>의 순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립적 자기의 현존, 신의 현존, 그리고 진리의 규칙에 따라 물질적 대상을 인식하기, 이 과정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앎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인식론적 통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데카르트는 "신과 영혼에 관한 신학보다는 철학을 통해 논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철학자의 ' 탐구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신학은 신앙의 만을 건드리는 것이고, 철학은 "논증" 건드리는 것입니다. 신과 영혼에 관한 신학도 다룰 있고 철학도 다룰 있는 인데, 신학보다는 철학이 다루어야 하고, 철학에서도 구체적으로는 논증이라는 것을 통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정신을 뚜렷하게 아는 힘을 가지는 자만이 신을 아는 힘을 가질 있다는 것이 3성찰의 핵심 이자 <<성찰>> 전체의 핵심 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이라고 하는 완전한 존재인 나의 자기의식이 성립한다고 말하는 듯하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의 불완전함을 자각할 때마다, 바로 그때에만, 신을 있다고 말합니다. 신의 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식을 정립한 사람만이 신을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자각적 자기의식에 의한 자립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신의 참다운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목적을 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체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계기들이었음을 회고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나의 기도와 신의 은총이 결합되어야 안심에 이를 있지만, 데카르트가 새롭게 세운 통찰에서는 신의 도움없이 '나를 아는 힘이 신을 아는 '입니다. 전적으로 혼자만의 힘으로 안심에 이른 것입니다."


유원, <<철학고전강의>> 제24 <<성찰>> 구성과 목적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3/40 철학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2회차독서 23/40

 

"계시를 말하는 사람은 신학자일 것이고, 그가 찾는 신은 '신학자의 신'일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철학을 통하여 찾는 신은 '철학자의 신'입니다. 철학자의 신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신, 즉 아브라함의 하느님 또는 이삭의 하느님은 아닙니다. (...) 계시는 단번에 신으로 올라가는 지혜의 단계입니다. 데카르트는 신학자의 신을 폐기하고 철학자의 신을 제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 출발점은 "의심"입니다. (...) 의심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질은 생각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있는 한 인간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 내가 신을 생각할 때에만 신의 존재가 확인될 것입니다. 내가 유한자라는 것을 자각할 때에만 무한자로서의 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무한자를 인식하는 데 있어 유한성은 필연적 계기가 됩니다. 이것이 '철학자의 신'에 관한 기본적인 테제입니다.

인간은 의심을 합니다. '의심하고 있는 나'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고를 하고 또 다른 모든 것들은 의심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는 존재란 육체일 수 없고 우리가 영혼이나 사유라고 일컫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러한 사유의 존재를 제1원리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사유의 존재", 즉 인간 정신의 현존, '사유하는 존재, 사유적 존재'(rescogitans)가 데카르트 철학의 제1원리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원리인 사유하는 존재, '내가 아는 것', 나의 자기의식으로 아는 것이 진리인식의 원천 또는 근원입니다. 이것은 헤겔이 말한 "이성으로부터 나온 자기의식의 자립적 철학"입니다. 내가 알아야 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있다 해도, 그 신이 진리의 원천이라 해도 그 진리를 알 수 있는, 진리 인식의 원천인 '자기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자기의식이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데카르트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를 분명하게 밝혀 말합니다. "이로부터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한 신이 존재하며"가 그것입니다. 이 신은 "모든 진리의 근원"입니다. 진리의 근원은 신이고, 진리는 신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신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진리가 나온다 해도 진리 인식의 원천인 사유적 존재가 없으면 그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데카르트 철학에서는 진리 인식의 원천으로서의 '사유적 존재'와 진리의 원천으로서의 ''이 구별됩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진리의 근원인 신이 내놓는 진리를 알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창조한 것입니다. "신은 우리의 이성을 그것이 명석판명하게 파악한 것들에 관해서 판단을 내릴 때 오류를 범할 수 있도록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므로 인간의 인식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인식의 확실성은 신이 보증합니다."


"이로부터 자연의 빛, 다시 말해서 신이 부여한 인식 능력(cognoscendi facultatem, cognoscendi facultas)이 관여하는 한, 즉 명석판명하게 지각하는 한, 그 인식 능력은 단지 참인 대상에만 관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만일 신이 우리에게 잘못된 능력, 즉 거짓을 참으로 간주하게 하는 능력을 부여했다면 신을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_<<철학의 원리>> 첫부분, 30"


강유원, <<철학고전강의>> 23강 진리의 원천과 진리 인식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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